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스기 겐신 (문단 편집) === [[다케다 신겐]]과의 관계 === 일반적으로 호적수라고 여겨지며, 이를 증명하는 것이 포위로 인하여 소금[* 당시에는 내륙 지방에서 소금을 얻을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, 신겐에게는 치명적이었다.]을 얻지 못하게 된 신겐에게 이것을 비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겐신이 소금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. 이 고사에서, 적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곤경에서 구해준다는 뜻의 '적에게 소금을 보내다(敵に鹽を送る)'라는 [[일본어]]의 관용구가 탄생했다.[* 실제 야마나시 지방의 오랜 사찰 중에는 비상시에 쓰려고 속에 암염을 넣어서 건축한 담장이 발견되는 곳이 있다.] 신겐은 이에 대한 답례로 명도를 보냈고, 현재도 이 칼은 남아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았다.[* 소금봉쇄의 태도(塩留めの太刀)라고 하는데,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소장중이다. 다케다 가문에서는 라이이치몬(來一門)의 라이쿠니유키(来国行)가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, 후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젠이치몬지(備前一文字) 일파의 도검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.] 한 편으로 당시의 자료에는 이러한 일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서술된 자료가 없다는 점을 들어서 후세의 창작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. 실제로 아버지를 쫓아내고 [[다이묘]]가 된 신겐을 겐신은 몹시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도 한다. 일부의 자료에 의하면 신겐의 죽음을 전해듣고 호적수의 상실에 생각지 못하게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도 있으나 신빙성은 낮기 때문에 겐신과 신겐의 관계가 실제로 어떠하였을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. 신겐 신격화로 일관하는 《갑양군감》에서조차도, 주변의 [[호조 우지야스]], [[토쿠가와 이에야스]] 등 쟁쟁한 명군주들조차도 신겐에게 영토를 빼앗겼지만 그런 신겐이 '''"오로지 겐신의 영토만은 빼앗지 못했다"'''며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정도. 또한 겐신은 라이벌인 신겐이 죽더라도 그 후계자인 [[타케다 카츠요리]]를 괴롭히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 인품과 정의로움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